조카 PC를 고민하다

 

구정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고향집을 방문했다. 각 방이며 거실에는 친지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윷놀이도 하며 민족의 놀이인 화투도 친다. 주방과 각 방을 돌며 쉴새없이 음식을 나르고 접시들도 옮기느라 바쁜 이들은 늘 여자들이다. 집안에 워낙 친척이 많고 방문하는 손님들도 많은지라 어디 한군데 숨어있기 좋은 장소를 찾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소음을 뒤로하고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서 한숨 자면 좋으련만… 이리 저리 도망 다니다 조카들의 방으로 들어갔으나 이 방도 역시나 인산인해다. 하지만 꼬맹이들은 최소한 잔소리는 하지 않겠지 싶어 침대 한구석에 자리를 잡아본다. PC앞이며 TV앞에는 게임기와 놀고 있는 꼬맹이들로 북적인다. 나도 이메일도 확인하고 게임도 해보고 싶지만 감히 끼어들 엄두가 안 난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꼬맹이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안돼, 그렇게 하면 고장 나잖아!”
“야 이게 네꺼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저리가”
“이 바보야, PC를 그렇게 끄면 어떡해!”

 

갑자기 소란스럽다. 아이들이 하도 많아 이름도 헷갈리는 한 꼬맹이가 달려오더니 도와달란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멈춰버렸단다. 내가 무슨 맥가이버라도 되는 줄 아나. 소프트웨어 몇 개밖에 쓸 줄 모르는 나한테 뭘 바라는 건지. 일단 모여있는 조카들 사이를 비집고 책상에 앉는다. 일단 PC를 다시 켜고 나니 부팅은 된다. 다행이다. 갑자기 내 인생에 본적도 없는 바탕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한 화면을 꽉 채운 파일들과 바로가기 아이콘… 부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브라우저 하나 띄우는데 걸리는 시간도 엄청나다. 잘은 모르지만 PC사양을 보니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 듯 하다.

 

부팅이 되었다며 자리를 비켜달라고 꼬맹이들이 아우성이다. 나는 자리잡은 김에 이메일 확인이라도 해야지 싶어 PC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에 걸린 듯 하다고 검사를 해봐야 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웹브라우저를 띄우고 이메일 계정 사이트의 주소를 쳤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툴바들이 여러 개 깔려있다. 역시 느리다. 누군가 이 이메일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자동 로그인이 된다. 로그 오프를 하고 다시 내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구정 인사 이메일이 몇 개 와있어 잠시 답장을 쓰고 PC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이미 꼬맹이들은 게임을 할 수 있는 TV로 다 모여있다. 이게 웬 횡재냐, 신문 정도는 읽어도 되겠지 싶어서 온라인 신문 서비스를 하는 포털 사이트로 이동하여 신문 기사들을 읽기 시작한다. 연휴라 그런지 기사들이 전부 비슷하다. 올림픽 이야기 몇 개와 귀성길 이야기 등 크게 흥미를 끄는 기사들이 없어 마우스로 바탕화면에 네모를 그려본다.

 

조카 PC의 바탕화면에 성인사이트 아이콘이?

 

갑자기 몇 개의 아이콘들이 눈에 띈다. 몇 가지는 아이들이 하는 온라인 서비스 바로가기 아이콘인데 수상한 아이콘들도 눈에 띈다. 무언가 잘못됐다. 찬찬히 뜯어보자 성인사이트로 연결되는 바로가기 아이콘들도 보인다. 이런! 분명히 애들만 사용하는 PC라고 했는데 왜 이런 것이 있을까? 문제가 심각해 보여 사촌 오빠를 부른다. 친척들과 주식이야기, 자동차 이야기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사촌 오빠를 끌고 와 PC앞에 앉힌다.

 

애들 PC가 이게 뭐냐며, 애들이 이런 사이트를 들어가면 어쩌려고 하냐고, 이런 저런 잔소리를 퍼부었다. 남들은 애들 PC사용 하는 것을 감시하려고 거실이나 안방에 PC를 설치한다는데 이렇게 무관심하냐고 타박을 한다. 오빠는 겸연쩍은 얼굴로 잘 몰라서 그냥 애들이 너무 늦게 안 자도록 지도를 해왔다고 한다. 오 지저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평소 애들과 잘 놀아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는 자상한 아빠임을 자부하는 그가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지.

 

백신은 제대로 돌고 있나 싶어 프로그램을 찾아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온갖 종류의 무료 백신들이 다 깔려있다. 이러니 PC가 느려질 수 밖에 없지. 싹 다 지우고 V3 Lite만 남겨둔다. 엔진 업데이트가 된지 오래되어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업데이트가 끝나고 검사를 시작한다. 잠깐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보니 주로 스파이웨어로 보이는 악성코드들이 다수 필터링되어 있다. 치료하기를 누르고 이것 저것을 둘러보니 총체적인 난국이다. 

 

옆에 앉아 있는 오빠에게 이 상황을 보라고 했다. 백신도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는 PC에 애들이 어떤 사이트를 얼마나 들어갔는지 확인도 안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부모가 어쩜 이렇게 무심할 수 있냐고 신문도 안보냐고. 조금 과장하자면 애들 손에 폭탄 쥐어준 거와 머가 다르냐고 닦달하자 묵묵부답이다. 그러다 한마디 한다. 잘 몰라서 그냥 놔뒀다. 아직 어린 애들인데 머 그렇게 큰일이 나겠냐. 내가 쓰는 노트북은 거의 업무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정품 V3를 사서 깔아서 잘 쓰고 있다고 되려 큰소리다. 참 큰일날 부모다 싶어 몇 가지 아는 PC보안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아이들을 불러 교육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먼저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아이콘들을 하나 하나 열어서 필요 없는 것들은 다 지우고 아무 사이트나 못 들어가게 주의를 당부시켰다. 백신은 꼭 활성화를 해두고 사이트 가드도 깔아놨으니 애들에게 교육하고 PC사용하는 시간을 정해두어 그 이상은 못 쓰게 하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보안 교육

 

성인들은 신문이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악성코드이니 DDoS니 사건들이 최근 많이 터지고 있어 많이 조심한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이나 피싱 등 금전적인 문제들이 연일 뉴스에서 보도를 하니 예전에 비해 정보보안에 대한 인식이 많이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이 쓰는 PC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버릇 등에 대해서는 부모들의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올바르게 PC를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알아야 할 지도 방법이나 미취학아동에게 교육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에게는 어른에게 맞는 보안 생활이 있고 또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이들 PC에서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위한 지침이 따로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이에 지난번 원고에 이어 이번에도 안철수연구소에 자문을 구한다. PC를 안전하게 그리고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아이들이 알아야 할 내용과 이들에게 교육을 해야 하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가이드를 요청해본다.@

자유기고가 Sidney Chon